폐기물 처리업자 배불리는 환경정책
김재섭 KAIST 교수(제넥셀 대표)
▲ 김재섭 KAIST 교수 ⓒ
최근 몇 년 사이 대학교나 연구소에는 남몰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며칠이 지나면 구청이나 검찰에서 출두해 달라는 요청이 온다. 감염성 폐기물을 일반 폐기물로 버렸다는 것이다.
도대체 감염성 폐기물이 무엇인가?
폐기물 관리법 2조에서 ‘인체에 위해를 줄 수 있는 물질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폐기물’을 말한다. 해로운 물질을 규제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문제는 ‘인체에 위해를 줄 수 있는 물질’이라는 부분이 굉장히 애매모호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02년 8월 7일 개정된 규정에 따르면 ‘감염성 폐기물 발생 의료기관 및 시험-검사기관’ 등에 대한 기준을 살펴보면 ‘학술연구 또는 제품의 제조-발명에 관한 시험-연구를 하는 연구소(의학-치과의학-한의학-약학 및 수의학에 관한 연구소)라고 정의되어 있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연구소에서 감염성 폐기물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바이오 연구소들 중에는 바이러스나 약물을 사용하지 않는 곳도 많다. 이런 부분까지 모두 감염성 폐기물로 분류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일반성 폐기물에서 감염성 폐기물로 분류가 되면 연간 처리비용이 약 5배정도 늘어난다. 현재 일반대학이나 벤처기업 연구에서 인건비 지출도 벅찬 상황에서 애매모호한 ‘인체에 위해를 줄 수 있는 물질’이라는 기준 때문에 연구를 위해 쓰여야 할 비용이 감염성 폐기물 업자들의 배를 부풀리는데 사용된다면 과연 어떤 경쟁력이 있는 것일까?
감염성 폐기물의 명확한 규정이 필요
정말로 ‘인체에 위해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반박이 나올 수 있다. 그렇다면 사례를 살펴보면 된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폐기물마다 과연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에서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된다.
예를들어 우리가 연구하고 있는 초파리의 경우 세계 2,000여곳의 대학과 연구실에서 초파리 폐기물을 일반폐기물이 아닌 감염성 폐기물로 처리하는 곳은 없다. 심지어 일반폐기물로 분류해서 사용할 때조차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소각처리를 했지만, 상당히 많은 곳에서는 이러한 부분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인체에 위해를 줄 수 있는 물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단지 법령을 들이대면서 감염성 폐기물이라는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불합리한 규제로 처리비용이 급격히 증가하면 결국 연구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최소의 연구비용으로 성과물을 내고자 하는 연구기관들에게 이러한 법의 적용은 결국 연구자체를 중단하라는 것과 같다.
지난 2000년, 한국과학기술원 생명과학과 교수들이 세운 벤처기업 (주) 제넥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현재 초파리 2만 5천라인을 유지하는데 연 6억원의 비용이 들어간다. 여기에 더하여 일반성 폐기물의 경우 처리비용이 일년에 4천만원 수준이다. 하지만, 감염성 폐기물이 되면 kg당 5천원의 비용이 들어가고 냉동보관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4억 이상의 돈이 추가로 들어가게 된다.
작년과 올해 두 번에 걸쳐 인력의 30%씩을 감축해야하는 상황에서 이 같은 처리비용의 직면은 심각한 위기임에 틀림없다. 외국과의 경쟁력을 위해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저렴한 인건비와 최소의 비용으로 결과물을 산출하는 것임을 놓고 보았을 때 이러한 명확한 규정이 없는 제도로 인한 피해는 바이오, 생명공학 산업을 포기하자는 것과 같다.
환경부에 과학전문관료와 자문위원단의 구성 시급
최근의 급속한 바이오-생명공학의 발전을 따라오지 못한 지금의 폐기물관리법은 조만간 엄청난 문제로 대두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등 선진국은 판단의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하는데 우리는 주먹구구식 법령 해석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이라도 각 폐기물에 대한 명확한 세부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를 위한 대안으로 환경부에 과학전문행정관료를 도입해야 한다. 그리고, 전문과학자, 법률가, 환경단체로 구성된 자문위원단을 구성해야 한다. 이들을 중심으로 각 영역마다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선정하고 법령해석에 있어서도 손질을 가해야 한다. 이러한 기초적인 부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폐기물 관련 논란은 이어질 것이다.
환경법을 살펴보아도 미국이나 유럽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강력하다. 그런 곳에서 일반성 폐기물로 처리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감염성 폐기물로 처리한다면 어떤 경쟁력이 있는 것일까? 물론, 정말로 ‘인체에 위해를 줄 수 있는 폐기물’은 비용이 많이 들더라고 감염성 폐기물로 처리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선진국에서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단지 법의 애매모호한 잣대를 기준으로 적용하는 것은 막아야 할 것이다.
최근 바이오•생명공학 분야는 2만불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과학기술부문의 주춧돌로서 평가 받고 있다. 이러한 분야가 과연 폐기물처리비용에 시간을 소비하는 일이 벌어져 기술이 퇴보하거나 연구자체가 중단되는 심각한 상황이 올 위기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정리=김선욱 객원기자>
2004.06.01 ⓒScience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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